좌절을 느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림,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

Pieter Bruegel de Oude,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58년경, 목판에 유채, 74×112, 벨기에 브뤼셀왕립미술관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누가봐도 공감할 정도의 큰 좌절이든, 별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좌절이든 간에 말이다. ‘좌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좌절했다고 하면 마치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는 식의 거대한 압박감만을 상상하곤 하지만 의외로 좌절은 굉장히 소소한 일에도 쓸 수 있는 단어인듯 하다. 가령 외국어 시험 점수가 기대치에 못미쳤다던지, 응원하던 야구팀이 플레이오프에 못올라갔다던지 할 때도 좌절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자신의 마음에 적용되었을 때는 문제는 심각해진다.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면 분명 언젠가는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는 있지만 현재 느끼는 이 좌절감은 도저히 가시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말이다.

또한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고 도전한 시험을 누구는 한 번에 합격하는데 자신은 여러번 도전해도 불합격일 때 좌절을 느끼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내가 하는 일은 왜 다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생각까지 들 때 사람들은 대부분 좌절을 느끼게 되고 다시 마음을 추스려서 재도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것 같다.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5년경-1569)의 <이카루스의 추락>은 이런 좌절감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림이다. 보통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림들은 동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름다운 정원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그림은 굉장히 냉소적이다. 하지만 냉소의 끝까지 달리는 그림이어서 오히려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민거리를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는 친구보다 상황을 직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까이꺼 신경쓰지마셈”하는 친구에게 더 의지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바로 이런 친구와도 같다.

보통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날개가 녹아서 바다에 추락해 죽은 설화는 뭔가 의미심장하고 안타까움 그 자체를 뜻한다. 인생의 큰 교훈을 주는 거대한 느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 그림 역시 이카루스의 추락을 주제로 담고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 방식은 기존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헉. 이카루스가 추락했어! 어떡해!!”가 아니라 “쟤 결국은 추락했네. 그러지 말라니깐.” 이런 식이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카루스의 다리가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른 경물들에 비해 작게 그려져 있어 이카루스의 추락이 큰 사건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보다는 이카루스가 추락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농작일에 열중인 농부와 하루동안의 피곤을 풀기라도 하는듯 고개를 젖힌 목동의 모습이 더 부각되어 있다. 수평선에 해가 걸려있으니 일출 혹은 석양일텐데 이카루스가 추락한 것은 하늘에 걸려있던 뜨거운 태양이었으니 이 그림의 시간대는 바로 초저녁, 즉 석양임을 알 수 있다.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의도한 바는 이카루스보다 그 외의 인물들에게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카루스가 추락을 하건 말건, 누군가가 좌절을 하건 말건 세상은 변함없이 평온하게 돌아간다는 의미를 말이다. 즉 자신이 아주 큰 좌절을 겪었어도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좌절에 동조하고 슬픔을 같이 나누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세상의 잔혹성을 보여주긴해도 역으로 생각해보면 좌절감은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으며 세상은 언제든 나를 다시 받아줄 용의가 있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큰 좌절을 겪어도 나의 마음을 잘 추스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점에서 이 세상은 꽤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혹 저 농부와 목동은 이카루스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쯧쯧. 이카루스, 저 친구 결국 빠졌네. 물속에서 나오면 따뜻한 스프에 럼주 한 잔이나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