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회화 드로잉, 1926년

이 드로잉을 촬영한 1926년은 칸딘스키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이다. 바우하우스(1919-1933)는 예술, 건축을 가르치던 학교로 이곳에서 교육이념으로 삼았던 합리적이고,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기본 조형원리의 중요성은 1960년대에 유행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한 흐름인 옵아트(Optical Art)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그에 뒤이은 러시아혁명은 칸딘스키에게 새로운 운명을 열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은 곧 미술에도 영향을 끼쳐서 전통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칸딘스키는 샤갈과 마찬가지로 고국으로 돌아가 혁명 정부의 미술 행정 고문이 되어 새로운 전위 회화를 널리 펴기 위해 활동할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 미술이 그러하듯 당시 러시아 역시 혁명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고전주의 화풍의 미술로 회귀하게 되었다. 결국 칸딘스키는 1920년대 이르러 정부의 예술 정책의 방침이 바뀌자 샤갈과 마찬가지로 고국 러시아를 떠나 베를린으로 갔다. 이윽고 그로피우스가 주재하는 바우하우스에 초대되어 클레 등과 함께 교편을 잡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칸딘스키의 작품은 초기의 서정적인 것에서 차가운 구성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수 많은 뛰어난 추상주의 작품을 제작했다. 1928년 독일로 귀화했지만 곧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자 프랑스로 피했으며, 1939년 프랑스로 귀화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대로 프랑스에 머물렀고 1944년 파리 교외의 누이이쉬르센에서 세상을 떠났다.

칸딘스키는 1926년에 바우하우스에서 행한 강의록을 기초로 그의 두 번째 이론서인 《점·선·면》을 출판하였다. 회화의 기초적인 평면에 대한 기본적인 조형요소의 관계에 대하여 기술한 것인데, 첫 번째 저작인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칫 잘못하면 무미건조하게 되기 쉬운 조형의 기본적인 사고에 직관과 상상의 비합리적인 내용을 담은 독특한 저서이다. 이 영상은 당시 칸딘스키가 고심했던 조형의 기본 원리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