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를 둘러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자존심 싸움

1. <모나리자> 도난 사건

1911년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 중이었던 <모나리자>가 도난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경찰은 2년동안 수사를 진행했었죠. 이때 피카소도 용의선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요.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피카소가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관련 영화 : <피카소: 명작 스캔들>)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의 머그샷

암튼 수사에 박차를 가한 끝에 겨우 절도범을 잡았는데 절도범의 정체는 <모나리자> 액자짜는 작업에 참여했던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빈센초 페루자였습니다. 빈센초 페루자는 <모나리자>를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판매하려다가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자국 문화재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했지만 절도범은 절도범일 뿐이지요. 당연히 돈과 관련된 범죄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에 투영되는 국가간의 자존심은 좀 유별난 것이어서 이탈리아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결국 이탈리아 법정은 구색만 맞추어서 아주 약한 형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모나리자>는 프랑스 소장품이라 돌려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여서 이탈리아가 영구 대여해준다는 방식으로 프랑스에 돌려주는 것으로 종결지었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형식을 취한 것이지요.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주제로 만든 당시 잡지의 표지 이미지

문화재 반환 문제에서 문화재를 본래 소속국가에 돌려줘야한다는 의무는 없습니다. 약탈된 것은 반환해야하지만 약탈되었다는 증거를 찾는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이지요. 도둑이 물건 훔쳐가면서 “내가 훔쳐감. ㅇㅇ” 이렇게 써놓고 가지는 않으니까요. 정식으로 구매해갔을 수도 있고, 선물받았을 수도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이 점 때문에 해외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를 반환해오는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나마 최선의 방법은 국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펀드를 조성해서 당당하게 사오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루브르박물관으로 돌아오는 <모나리자>(1914)

이후 프랑스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나리자를 방탄 유리에 넣어서 전시하였고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면 <모나리자>가 설치된 벽이 자동으로 지하로 내려간다는 <명탐정 코난>에나 나올법한 썰도 있습니다.

방탄 유리에 보관 전시 중인 <모나리자>

2. 프랑스 월드컵 우승에 대한 이탈리아의 질투와 울분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아도 60년만에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도 슬픈데, 불난 집에 기름붓는 격으로 그간 무시해왔던 프랑스가 우승까지 해버리니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프랑스 축구는 원래 이탈리아가 라이벌로 여기지도 않았거든요.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는 했지만 자국에서 열린 대회였기 때문에 그닥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잉글랜드도 같은 이유로 무시받고 있지요. 인정해줘봤자 “애썼다”, “좀 했네” 이 정도랄까요? 지네딘 지단까지는 인정해도 프랑스 축구자체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는 인식이 뿌리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떡하니 우승해버린겁니다. 우리나라가 독일을 잡아준 것도 크게 한 몫 했습니다. 독일처럼 우승권에 근접한 팀들은 본래 16강 이후로 컨디션이 올라오도록 하기 때문에 조별 예선에서 흐느적거릴 때가 많습니다. 즉, 독일이 이번에 경기력이 별로였더라도 일단 16강에 올라가면 무서운 팀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웨덴과의 플레이오프 패배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이탈리아 선수들

이탈리아는 독일과 스페인이 일찍 퇴장해서 좋았지만 프랑스가 우승하고, 잉글랜드는 4강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빠졌을겁니다. 크로아티아의 동화같은 선전은 신경도 안썼을겁니다. 그들은 그래도 이탈리아의 라이벌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거든요.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마음을 다 잡고 월드컵 탈락의 책임을 물어 축구협회 임원들을 전부 퇴진시키고 새로운 인물들로 채우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습니다. 쓰리지만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었죠.

그런데 프랑스가 울고 싶은 마음에도 겨우 참고 있던 이탈리아에 찬 물을 확 끼얹은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루브르박물관이 월드컵 우승 기념으로 <모나리자> 부인에게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혀버린 것이지요.

“To. Italy”

울고만 싶었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드디어 폭발했고  화풀이할 상대를 드디어 찾은 듯합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된 이후 영구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루브르박물관에 소장하기로 합의를 본지 벌써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몰라. 다 필요없어!!’라는 식의 반응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이탈리아로 반환되는 일은 없을겁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수아 1세의 요청으로 프랑스로 떠날 때 직접 가져간 것이거든요. 현재까지 학설을 이게 지배적입니다. 아무리 실 눈을 뜨고 봐도 약탈당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나 결론이 나와있는 논란이지만 <모나리자>와 축구를 둘러싼 이탈리아와 프랑스 간의 자존심 싸움은 언제 봐도 재밌습니다. 우리는 그저 재밌게 보고 즐기면 됩니다. 덕분에 미술사 지식도 쌓고, 축구의 역사에 대해서도 재밌게 알아갈 수 있고 좋죠. 뭐 🙂

오르세미술관, 구스타프 쿠르베의 대표작품 2점을 Room7으로 이동하다.

지난 6월 11일(월)에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의 <오르낭의 매장>(1849-1850)과 <아뜰리에>(1854-1855)가 새로운 공간(Room 7)으로 옮겼다. 오르세미술관에서 말하길 향후 진행될 전시실 개편의 일환이라고 한다.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면서도 현재 하고 있는 전시 방식이 꽤 마음에 들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귀스타브 쿠르베는 사실주의 화가로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전통에서 벗어나 근대미술의 시작을 선도한 인물이다. 물론 미술에 대한 혁신적인 생각과 달리 화법에서는 여전히 전통 화법을 고수해서 반쪽짜리 혁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동안 유지해온 미술에 대한 관념을 처음 깼다는 점에서 쿠르베는 미술의 근대성을 처음 부여한 화가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이 작품들은 상상 속의 신화, 종교화를 배척하고 화가 본인이 직접 본 것만을 그리겠다는 쿠르베의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캔버스임에도 불구하고 큰 스케일로 그린 것이다.

귀스타브 쿠르베가 활동한 19세기 중반은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오르세미술관은 1층 전시실은 고전미술이라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작품으로 배치하고 마지막에 쿠르베의 이 두 작품을 배치해왔다. 그리고 인상주의부터 본격적으로 근대미술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 3층은 인상주의의 대부격인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올랭피아>와 <풀밭 위의 점심식사>부터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오르세미술관의 해석은 귀스타브 쿠르베가 근대미술 시작에 영감을 제공했지만 시대상과 고전미술의 방식을 답습한 그의 화법으로 인해 어찌되었건 쿠르베는 고전미술의 끝으로 본 것이다. 반면에 쿠르베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고, 실제로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한 적도 없었던 에두아르 마네는 ‘인상주의의 대부’라는 상징성과 쿠르베보다 진일보한 근대성을 감안하여 쿠르베와 같은 공간이 아닌 3층에서 전시해왔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헷갈리지 않고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흐름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19세기 초반에 신고전주의, 낭만주의가 유행하다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나오면서 미술에 대한 관념에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드디어 에두아르 마네부터 본격적으로 근대미술이 시작되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Before] 2015년에 파리에 갔을 때 촬영한 Room 7의 전경
[After]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을 배치한 현재의 Room 7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르세미술관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작품의 재배치를 하려고 한다. 혁신적이나 고전미술의 경향도 함께 갖고 있던 구스타브 쿠르베가 전시의 어떤 흐름에 놓이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p. s. 얼마 전에 오르세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쿠르베의 <아뜰리에>가 보존처리 중이어서 못보고 온게 지금까지도 꽤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캔버스가 커서 쉽게 이동하기도 어렵고 보존처리하는 과정도 전시의 부분으로 보아 유리벽을 설치하고 진행과정이나마 볼 수 있게 해둬서 다행이었지만.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아뜰리에’를 보존처리하는 모습을 이렇게 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Before, After의 비교 사진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잠시 내려놓은 캔버스. 아마 작품 부분은 따로 처리 중이었는 듯.

좌절을 느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림,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

Pieter Bruegel de Oude,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58년경, 목판에 유채, 74×112, 벨기에 브뤼셀왕립미술관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누가봐도 공감할 정도의 큰 좌절이든, 별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좌절이든 간에 말이다. ‘좌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좌절했다고 하면 마치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는 식의 거대한 압박감만을 상상하곤 하지만 의외로 좌절은 굉장히 소소한 일에도 쓸 수 있는 단어인듯 하다. 가령 외국어 시험 점수가 기대치에 못미쳤다던지, 응원하던 야구팀이 플레이오프에 못올라갔다던지 할 때도 좌절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자신의 마음에 적용되었을 때는 문제는 심각해진다. 시간이 흘러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면 분명 언젠가는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는 있지만 현재 느끼는 이 좌절감은 도저히 가시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말이다.

또한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고 도전한 시험을 누구는 한 번에 합격하는데 자신은 여러번 도전해도 불합격일 때 좌절을 느끼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내가 하는 일은 왜 다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생각까지 들 때 사람들은 대부분 좌절을 느끼게 되고 다시 마음을 추스려서 재도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것 같다.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5년경-1569)의 <이카루스의 추락>은 이런 좌절감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림이다. 보통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림들은 동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름다운 정원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그림은 굉장히 냉소적이다. 하지만 냉소의 끝까지 달리는 그림이어서 오히려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고민거리를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는 친구보다 상황을 직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까이꺼 신경쓰지마셈”하는 친구에게 더 의지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카루스의 추락>은 바로 이런 친구와도 같다.

보통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날개가 녹아서 바다에 추락해 죽은 설화는 뭔가 의미심장하고 안타까움 그 자체를 뜻한다. 인생의 큰 교훈을 주는 거대한 느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 그림 역시 이카루스의 추락을 주제로 담고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 방식은 기존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헉. 이카루스가 추락했어! 어떡해!!”가 아니라 “쟤 결국은 추락했네. 그러지 말라니깐.” 이런 식이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카루스의 다리가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다른 경물들에 비해 작게 그려져 있어 이카루스의 추락이 큰 사건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보다는 이카루스가 추락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농작일에 열중인 농부와 하루동안의 피곤을 풀기라도 하는듯 고개를 젖힌 목동의 모습이 더 부각되어 있다. 수평선에 해가 걸려있으니 일출 혹은 석양일텐데 이카루스가 추락한 것은 하늘에 걸려있던 뜨거운 태양이었으니 이 그림의 시간대는 바로 초저녁, 즉 석양임을 알 수 있다.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의도한 바는 이카루스보다 그 외의 인물들에게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카루스가 추락을 하건 말건, 누군가가 좌절을 하건 말건 세상은 변함없이 평온하게 돌아간다는 의미를 말이다. 즉 자신이 아주 큰 좌절을 겪었어도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좌절에 동조하고 슬픔을 같이 나누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세상의 잔혹성을 보여주긴해도 역으로 생각해보면 좌절감은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으며 세상은 언제든 나를 다시 받아줄 용의가 있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큰 좌절을 겪어도 나의 마음을 잘 추스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점에서 이 세상은 꽤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혹 저 농부와 목동은 이카루스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쯧쯧. 이카루스, 저 친구 결국 빠졌네. 물속에서 나오면 따뜻한 스프에 럼주 한 잔이나 줘야겠다.’

기분 좋은 날

오늘은 전시 해설을 2차례나 하고, 저녁 때는 강의도 있어서
완전 넉다운상태이지만 감사한 마음과 함께 짜릿해진다.
그간의 고생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 든다.

그 어떤 지적도 받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지난 2개월동안 사활을 걸고 썼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야 목표의 80%라도 달성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나가사키현미술관 옆 카페

나가사키현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혼자 밖으로 나와 산책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거리에 여러 카페와 음식점들이 보였다. 가장 커피가 맛있을 것 같은 카페에 들어갔다. 내부는 너무 어두워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커피를 마셨다. 바쁘게 유적지, 박물관 등을 다녔던 답사가 마무리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